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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재활용·세컨드라이프, ESS 새 축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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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재활용·세컨드라이프, ESS 새 축으로 부상

폐배터리 대규모 퇴역, '쓰나미' 앞에 선 산업계

IEA의 'Global EV Outlook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약 1,400만 대로, 처음으로 전체 신차 판매의 20%에 육박했다. 배터리 수명이 통상 8~1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020년대 초중반에 판매된 차량의 배터리가 순차적으로 퇴역하는 2030년 전후부터 폐배터리 물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BloombergNEF는 이 흐름을 두고 "이제 막 시작된 쓰나미"라고 규정하며, 2030년대 중반까지 연간 수백 GWh 규모의 회수·재사용 시장이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처리 부담이 아니라 '놓쳐서는 안 될 자원'이라는 점이다. 신규 광산 개발은 환경 영향 평가와 인허가로 5~10년이 걸리지만, 폐배터리 팩에는 리튬 5~7%, 니켈 10~35%, 코발트 5~20%가 농축돼 있다. 배터리 팩 1톤에서 회수 가능한 코발트는 같은 무게의 채굴 광석보다 수십 배 많은 것으로 알려져, '도시 광산(Urban Mining)' 개념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배터리 제조사들이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의 한 축으로 재활용을 선택하는 이유다.

세컨드라이프, '절반의 수명'을 다시 쓰는 기술

전기차 배터리는 잔존용량(SOH, State of Health)이 70~80% 수준으로 내려가면 주행 성능상 퇴역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에너지저장장치로 용도 전환하면 10년 이상 추가 운용이 가능하다. 미국 NREL(National Renewable Energy Laboratory)은 2024년 보고서에서 SOH 70% 수준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도 주파수 조정용 ESS로 최대 12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컨드라이프 전환에는 셀 단위 SOH 진단, 절연저항·열화 특성 평가, 등급 분류, 배터리 관리 유닛 재설계 등 표준화된 절차가 필수다. 안전성 검증에는 미국 UL의 'UL 1974(재사용 배터리 평가 기준)'가 대표적으로 적용된다.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셀은 재활용 공정으로 보내져 리튬·코발트·니켈 회수에 투입된다. 배터리가 20년 가까이 '두 번의 수명'을 살게 되는 셈이다.
재사용 ESS의 경제성은 이미 입증되는 중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요한 크라위프 아레나 경기장은 닛산 리프의 폐배터리로 약 3MWh급 저장 시스템을 구축해 태양광 발전과 연계 운영 중이고, 독일에서는 아우디가 RWE와 협력해 4.5MWh 규모의 폐배터리 저장소를 건설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신품 ESS 대비 30~40% 낮은 초기 투자 비용이 최대 매력이다. 배터리 등급별 적정 운용 범위를 정확히 설계한다면 리튬 배터리 제품군과 동일한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

습식·건식·직접 재활용, 공정이 효율을 결정한다

재활용 기술은 크게 건식 제련(Pyrometallurgy), 습식 제련(Hydrometallurgy), 직접 재활용(Direct Recycling)으로 나뉜다. 건식은 고온 용융으로 니켈·코발트 합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라 공정이 단순하지만 리튬 회수율이 40% 안팎에 머문다. 반면 습식 제련은 산(酸) 침출과 용매 추출을 거쳐 리튬 회수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현재 상용 플랜트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는 성일하이텍·에코프로 등이 습식 기반 시설을 가동하며 글로벌 위탁 물량을 확보 중이다.
차세대 공정으로 주목받는 직접 재활용은 양극재 분말 자체를 분리해 재소성하는 기술이다. NREL 연구에 따르면 직접 재활용은 신품 대비 원자재 투입 에너지를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도 원용량의 90% 이상 성능을 복원할 수 있다. 다만 셀 해체 자동화와 불순물 제거 기술이 과제로 남아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다. 결국 각 공정의 선택 기준은 회수율, 에너지 비용, 탄소 배출량의 삼중 최적화 문제로 귀결된다.

리튬 가격 폭락에도 재활용 시장이 자라는 이유

탄산리튬 가격은 2022년 고점 대비 80% 이상 급락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은 재활용 경제성에 부정적 요인이지만, 시장은 오히려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가격 변동성 그 자체다. 광물 가격은 공급 충격에 따라 수시로 출렁이는 반면, 재활용 소재는 가격 예측이 쉽고 탄소 배출량이 크게 낮다. BloombergNEF는 재활용 원료가 2030년대 후반에는 코발트 수요의 20% 이상을 충당하는 안정적 공급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재활용 비용 곡선도 개선되고 있다. 셀 분해 자동화와 건식·습식 하이브리드 공정 도입으로 처리 단가가 낮아졌고, 유럽·미국발 정책 지원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의 Redwood Materials는 라스베이거스 외곽에 세계적인 규모의 폐배터리 재활용 단지를 가동하며 완성차 업체들과 장기 계약을 맺었다. 원자재 가격의 '저점 방어'와 '탄소 감축 인센티브'가 재활용 설비 증설의 이중 안전판이 되는 구조다.

유럽 '배터리 여권'과 한국의 대응

유럽연합은 2023년 제정한 신(新) 배터리 규정(EU 2023/1542)으로 생산자에게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를 부과했다. 2031년부터는 코발트 16%, 리튬 6%, 니켈 6%, 납 85%를 재활용 소재로 충당해야 하며, 2036년에는 각각 26%, 12%, 15%, 85%로 상향된다. 여기에 더해 2027년 2월부터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Digital Battery Passport)'이 의무화되어 원산지·탄소 발자국·재활용 정보가 배터리 전 생애에 걸쳐 추적된다. 사실상 EU 시장에 진입하는 모든 배터리는 순환 경제 데이터를 증명해야 한다.
한국도 규제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정부는 사용 후 배터리 등급 판정 기준과 이력 관리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며, 자원순환 기본법 개정을 통해 폐배터리 반납·회수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국내 재활용 배터리 정보의 표준화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셀·모듈·팩 구조가 제조사마다 상이해 해체 비용이 높고, 안정적인 회수 물량 확보가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태양광 ESS와 만난 폐배터리, 순환 경제의 완성

폐배터리 기반 ESS는 재생에너지의 최대 약점인 출력 변동성을 완화하는 실용적 수단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B2U Storage Solutions는 폐배터리로 수십 MWh 규모의 저장 시스템을 조성해 전력 도매시장에서 에너지 차익 거래와 계통 서비스를 제공하며 상업 운전 중이다. 태양광 발전소에 세컨드라이프 ESS를 결합하면 낮 시간대 과잉 생산분을 저장했다가 저녁 피크 시간대 방출해 전력 판매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DLXN Energy는 태양광 발전과 ESS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관점에서 세컨드라이프 배터리 시장을 주목한다. 재사용 배터리 팩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하고 계통 요구에 맞게 출력을 제어하는 기술은 곧 고효율 인버터와 에너지 관리 시스템의 몫이다. 또한 재활용 공정에서 나오는 리튬·코발트를 다시 배터리 원료로 환원시키는 흐름은 배터리 저장 기술 소개통합 상품 포트폴리오가 설명하는 미래 에너지 체계의 핵심 전제가 된다.

남은 과제, 안전·성능 보증·제도

세컨드라이프와 재활용이 완전한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첫째는 안전 기준의 글로벌 통일이다. 국가별 인증 체계와 성능 등급 기준이 달라 폐배터리의 국경 간 거래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둘째는 성능 보증 문제로, 중고 배터리를 ESS에 장착한 사업자가 화재 사고나 열화로 인한 손해를 보험사로부터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사 차원의 품질 보증서와 사고 이력 추적 체계가 병행돼야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셋째는 셀-투-팩(Cell-to-Pack) 기술의 보편화다. 모듈 단계를 생략한 고집적 팩은 에너지 밀도를 높이지만 해체·분리가 어려워 재활용 비용을 상승시킨다. 전문가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해체 용이성(Design for Recycling)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활용 산업은 더 이상 전기차 시대의 '뒷정리'가 아니다. 원자재 공급망의 한 축이자 에너지 전환 비용을 낮추는 인프라로, 태양광·ESS 생태계와 결합해 순환 경제를 완성할 핵심 산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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